2023. 2. 10. 12:02ㆍ법조인
작량감경 외에는 다른 감경사유가 전혀 없는 강도상해범, 그렇지만 합의도 하였고 정상관계가 더 이상 좋을 수 없어서 거의 무조건 3년 6월의 형이 선고될 것으로 짐작되는 피고인에 대하여 과연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가 있을까?
개업초기에 그러한 피고인 가족이 선임을 하러 왔기에 변호사가 할 아무런 역할이 없다며 수임을 거절하였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쫒겨난 가족이 살그머니 다시 문을 열고 '변호사님, 저도 다른 사무실에 다녀보는 등 알만큼 알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가족의 입장에서 3년 6개월 실형을 살 피고인에 대하여 돈을 아끼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을 수 없으니, 결과가 날 때까지라도 희망이 있는 것처럼 말이나 하여 주십시요. 그래야 피고인이나 가족이 그 사이라도 희망을 가질 것 아닙니까.'라고 한다.
그렇다.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고, 형을 가볍게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 다른 중요한 역할도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 사실상 불가능하겠지만 절도와 상해로 공소사실을 분리할 수는 없는지 검토하는 모습을 보여 형이 확정되기 전에 마음의 위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 그러면서 3년 6개월을 복역할 피고인에 대하여 차츰 차츰 마음으로 준비하게 하고 복역기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의미있는 기간이 되도록 하라는 격려를 하는 역할, 진실로 억울하다고 하지만 증거상 유죄로 판정될 수 밖에 없는 피고인에 대하여 증거법이나 재판제도의 원리를 설명하여 납득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있는 것이구나.
변호사가 이러한 역할도 충실하게 하는 것으로 비로소 자신의 일을 다한 것일진대, 변호사 업무가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가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