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금유감

2023. 2. 24. 10:39기타

성금유감(誠金遺憾)

 

1. 기상관측 사상 최대의 가뭄이라는 언론의 연일 대서특필이 아니더라도 우리 온 국민은 금년의 가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걱정하며 지혜를 모으기도 하였다.

그런데 역시 예상대로 언론은 가뭄 대책을 위한 성금을 모금하며 이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고, 우리들 상당수는 그 뜻에 찬성을 하여 성금을 내면서도 씁쓰레한 느낌을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성금이란 글자 그대로 자진하여 성의를 표시하며 내는 돈인데 어찌하여 우리는 씁쓰레한 느낌으로 내게 되는 것일까.

2. 그 지독한 가뭄이 계속될 때, 그래도 가뭄은 어차피 끝이 있을 것이고 어느 날 장마가 시작되면 또다시 해마다 그래왔듯이 물난리를 겪을 것이라 짐작하였는데 과연 오래지 않아 우리들은 물난리를 겪고야 말았다.

물론 가뭄 끝의 물난리는 위력이 그리 대단하지 아니하여 우리들은 아직 수해에 대한 성금을 낼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아마도 금년 역시 연례행사인 수해를 당하고 성금을 모으게 되리라 생각되는데, 오죽하면 본인이 소속한 대구지방변호사회에서는 수재의연금 상당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겠는가.

여기서 도대체 국가는 무엇을 하길래 해마다 겪게되는 자연재해를 국민의 성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정도의 자연재해라면 천재지변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마땅히 국민의 세금으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여 두었어야 하지는 않는가.

한걸음 나아가 연말쯤 해서는 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거둘 것이다. 불우이웃이 어제오늘에 생긴 것도 아닐텐데 국가는 왜 해마다 성금에 의존하며 불우이웃에 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책 마련에는 소홀하고 있는가. 성금으로 내는 돈이 아까워서도 아니고 성금이 가지는 사랑의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과연 국가는 무슨 방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궁금하기 그지 없어서 해보는 말이다.

3. 다음으로 어느 하나의 방송사나 신문사에 성금을 내지 않고 여러 언론기관에 분산하여 내어야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과연 그것은 성금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본인이 많은 성금을 내고는 싶지만 큰 금액으로 인하여 위화감을 조성할까봐 분산하여 낸다고 하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혹시나 하나의 언론기관에만 내었다가 다른 언론기관으로부터 눈총을 받지나 않을까가 염려되고, 종전에 한군데만 내었다가 다른 언론기관으로부터 졸린 경험이 있기에 아예 요령을 피운 경우라면 다소 성금의 본래의 뜻과는 다르지 않는가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인 것이다.

4. 또 있다. 바로 ‘금일봉’이란 것 말이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인가 그 이후인가는 기억에 없지만 본인은 그것이 돈대신 금을 한봉지 넣어 주는 것으로 알았다. 나중에 액수불상의 돈이 든 봉투라는 것을 알고서도 금일봉이란 용어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이었다. 

아마도 금일봉이란 성금 봉투를 전달한 기탁자는 남 모르게 선행을 하고자 그렇게 하였을 것이며,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다면 언론기관은 마땅히 익명으로 성금을 낸 것으로 처리할 것이지 굳이 그 명의를 공표하고 액수는 금일봉이라고 얼버무림으로써 마치 성금 기탁자가 자신이 낸 성금 액수를 세상에 공표하는 것이 쑥스러워 그리한 듯이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대한변협신문 2001.7.2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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