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실 출입통제

2023. 2. 14. 12:01법조인

판사실 출입통제

 

1. 어느 법학자가 하였다는 다음과 같은 말-자신은 재판관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왜냐하면 재판관은 자신이 모르는 사항에 대하여도 모른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을 읽고 참으로 그럴듯하다고 감탄한 적이 있다. 이 법학자의 말은 결코 재판관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관이면 필연적으로 안아야 할 고민에 대한 이해이리라.

   재판관이 모른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데에는 입증책임이라던가 자유심증주의 등의 제도가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 따위는 재판관의 결론이 진실과 가깝다는 전제하에 이용되는 것일 뿐 항상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자신의 진실이 외면될 때, 당사자는 제도 따위는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재판관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2. 이런 원망을 듣게되는 재판관도 억울하겠지만 당사자의 원망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오래 전에는 당사자들이 그저 재판관을 원망만 하였고 자신의 팔자 소관으로 돌렸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항의를 하는 당사자도 나오고 있다. 민주화 과정으로, 권위주의를 불식시킨다고 좋아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지만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3. 언젠가 자신이 정말 억울하다고 확신을 하는 당사자가 자신에게 패소판결을 내린 판사님께 항의하러 가겠다고 하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어보니 농약을 들고 가 판사님 앞에서 자살하겠단다. 판사실은 출입이 금지된다고 하니 법정을 통하여 가면 되고, 부속실에서는 친척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가만 보니 나름대로 충분히 준비를 하였으며 정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번쩍 정신이 들어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왜 상급심 판단을 받지 않으려고 하나고 물었더니 변호사가 자신의 유족과 의논하여 상급심을 진행해 달란다. 나는 유족들과 진행하기는 싫다. 그러니 당신이 죽고 나면 이 사건은 끝난다고 겨우 설득을 하였다.

4. 어떤 자는 흉기를 소지한 채 판사실에 들어가기도 했나보다. 억울하다고 하는 당사자를 설득하기에는 너무 힘이 부친다. 어쩌겠나, 이런 자가 판사실 접근을 할 수 없도록 물리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그러자면 누구를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판사실 출입을 막는 것이 가장 간편하겠지.

   그래서 대구법원은 이제 곧 변호사를 포함한 일반인 어느 누구도 판사실 접근을 어렵게 한단다. 불가피한 조치라고 이해는 하면서도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든다.

   과연 법률가들은 진실을 외면 당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설득을 하였던가? 안 그래도 뜬 구름 위의 판결이라는 말도 있는데, 외형상 국민과 멀어지는 것은 또다른 오해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출입을 어렵게 한다고 어떻게든 출입하려고 작심한 사람을 모두 막는 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출입을 어렵게 한 것은 항의의 강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얼핏 외로움의 대명사로 쓰이는 절간이나,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유행가 한 구절을 떠올리며, 판사님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대구지방변호사회보 제16호 200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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