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 13:53ㆍ법조인
1. 변호사 개업 초기. 전과도 좀 있는 청소년이 다시 동종 전력의 범행을 하여 구속되었다.
초짜 변호사이니 그저 열심히 일할 뿐, 보수관계는 사무장이 알아서 하였는데...
이 녀석이 석방되고, 한 열흘 뒤에 모친이 나타났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데 보니,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오천원짜리, 만원짜리 돈이 어지럽게 한 묶음으로 되어 있다. 파출부, 식당 허드레일로 돈을 벌다 보니 약정한 성공보수금 200만원을 못채우고 100만원만 가져왔단다. 성의를 생각하여 받는다며 20만원을 챙기고, 나머지 80만원을 되돌려주느라 애먹었다.
2. 한 2년쯤 전이던가. 행정사건,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휴일에 급사하였는데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고 싶다고 하였다. 승소여부가 불투명하지만 최선을 다해보자 하였다. 성공보수금은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고 하길래, '성공보수금은 기본적으로 변호사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한다. 나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지만 이 말만 믿고 있기가 불안하면 의뢰인 내키는대로 성공보수금을 약정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 부인은 그럼 변호사를 믿으니 따로 성공보수금 약정을 하지 않겠지만, 승소하는 경우 반드시 사례하겠다고 한다. 나는 그냥 웃었다.
다행히 사건은 승소로 확정되었다. 그 부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사례금이라며 봉투를 내민다. 사건 의뢰 당시 구두로만 성공보수를 약정하는 경우 이를 그대로 이행하는 예는 거의 없다. 나는 '부인이 고맙다고 나타난 것만 해도 정말 감사한다. 서면으로 약정하지도 않았고 구두로도 약정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니 사례금은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부인은 매우 적은 성의 표현일 뿐이니 받아달라며 봉투를 두고 달아났다. 나는 아마도 부인이 말하는대로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의 금액으로 짐작하고 금액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봉투를 책상에 넣어두었다.
한달여 지나 서랍속 봉투를 확인하고 참, 성공보수금으로 받은 것이지 하며 은행에 가져갔다. 은행에서 비로소 봉투안에 있는 것을 보니 수표 한장이다. 그저 그 정도 금액이려니 하며 은행직원에 주었다. 통장을 받아보니 의외의 금액이 찍혀있다. 깜짝 놀라 직원에게 수표금액을 잘못 본 것이 아니냐고 하니, 직원은 다시 확인하더니 맞단다. 내가 짐작한 금액의 1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런 낭패가... 그러나 그 부인은 이후 내가 하는 전화를 한번 받고는 다시는 내 전화 조차 받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1년여 흘렀다. 우연한 기회에 부인의 가족으로부터 부인이 암에 걸렸고 투병끝에 사망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낭패감, 허망함, 하늘에 대한 원망 등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