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추억
2023. 5. 24. 15:21ㆍ기타
국민학교 저학년 무렵 동네 서당(사실 서당이라기 보다 한문을 많이 알던 동네 어른이 아이들에게 그냥 한자를 가르치는 집이었다)을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내게 한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글자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몇몇 글자는 깨우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무 의미 없이 진도만 나갔다. 나는 한자 옆에 작은 글씨로 쓰여진 한글을 눈치껏 미리 보며 마치 진도 나가는대로 따라잡는양 하였다. 결국 훈장님은 나를 제법 많은 한자를 깨친 것으로 알았고, 그런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얼마나 즐거워하시던지...
그 때부터 아버지는 먼 집안 사람 등의 방문이 있으면 나를 불러들여 공부한 한자를 읽어보게 하셨다. 물론 나는 당연히 한자는 모르면서 그 옆의 한글 토씨를 읽었고... 방문객의 감탄과 아버지의 자랑스러움을 보며, 기망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은근히 즐겼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한참동안 농사일에서 면제되었다. 아버지가 새벽같이 나가셔서 한짐 나무를 해오실 때도 나는 마루에서 책읽는 모습만 보여주면 되었다. 아아 이러한 나의 기망을 아버지는 아셨을까. 아시고도 모른 척 하시면서 언젠가는 제대로 공부를 하겠지라는 믿음으로 나를 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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