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0. 11:23ㆍ법조인
조정법원
1. 누구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는 결단이 요구되는 때에는 무언가 모를 막연한 두려움에 주저하게 될 것이다. 본인이 약 18년간의 판사생활을 마감하고 변호사로서 새 출발을 하고자 하였을 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걱정이었지만 그 당시는 얼마나 고뇌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판사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아주 중요한 부분은 당시의 건강형편에 과연 법원에서 주어지는 그 많은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점이었다. 사표를 제출할까 말까를 고심하던 때에 다음으로 담당할 예정이던 민사항소부 판사실을 기웃거리면서 책상 위에 쌓여진 기록을 보고서는 마음을 다잡곤 하였던 것이다.
그 이후 변호사생활을 하면서도 법정에 드나들 때마다 엄청스럽게 쌓여진 기록을 보면서 늦었지만 흔히 말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다.
2. 판사생활을 하면서 깨알같은 글씨의 탄원서나 진정서를 볼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읽어보란 말인가 하며 짜증을 부리면서도 혹시나 그 속에 사건을 꿰뚫는 핵심사항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때로는 꼼꼼하게, 때로는 스치듯이 하였지만 어쨌거나 읽기는 하였었다.
그런데 이제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접하게 되는 소송관계인들은 과연 판사님들이 자신들의 글을 정말 읽어보시는가에 대하여 매우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 때마다 판사님들은 글을 읽는데는 귀신같은 분들이라 당신들이 제출하는 글을 읽어보실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그 글을 읽게될 판사님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송관계인들은 이러한 글을 제출하고도 판사님들이 자신의 하소연을 다시 들어주기를 원하고 있으니 어쩌랴.
3. 상당기간 추진하여 왔고, 요즈음에는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조정제도는 형식적 증거재판에 의해 초래될 수도 있는 실체적 진실과의 거리를 좁히는 중요한 역할도 하지만, 이처럼 말많은 소송관계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법원의 결론을 이해시킴으로써 분쟁의 종국적 해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조정에 이르기까지 판사님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수한 노력을 기울이고도 조정에 이르지 못하였을 경우는 너무 허망하지 아니한가. 또한 수소법원 조정의 경우 형평성에 입각하여 소위 강제조정을 하였다가 막상 판결에서는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국민들의 법원에 대한 신뢰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4. 여기서 본인은 조정법원의 설치를 생각해본다
현재 법원에서 하는 조정위원회에 의한 조정에서 인간적인 정에 호소하는 조정위원의 호소가 당사자에게는 공허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진다. 아무래도 감정의 골이 깊은 당사자를 설득하여 법적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에는 사회적 식견도 중요하지만 법적 절차에 정통함으로써 당사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 보다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조정법원의 조정관은 법관의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어야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증거재판에 의한 실체적 진실발견의 한계에 관하여 납득을 시키자면 아무래도 당사자의 하소연을 충분히 들어줌으로써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인식을 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 경우 불필요하고도 낭비적인 요소가 너무나 많지만 그래도 분쟁의 종국적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마땅히 시도하여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면 조정관은 남은 여생을 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원로법조인을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원로법조인의 법적, 사회적 식견과 경험, 그리고 인생의 깊이에서 우러나는 원숙함은 당사자로부터 신뢰를 받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조직설치로 인한 국가적 비용을 생각하면 우선은 대부분을 비상임으로 하면서 조정법원의 역할이 증대하는 대로 상임을 늘려 가면 될 것이다.
끝으로 조정법원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우선은 일반법원에서 조정에 회부하는 사건을 취급하되, 자동차손해배상사건 등과 같이 조정에 친한 사건에 대하여는 조정전치주의를 활용함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서 차츰 조정전치 사건을 확대하여 단순한 분쟁의 경우는 조정으로 종국처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법적 분쟁 사건만을 일반법원에서 깊이 있게 재판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대한변협신문 2001.11.19.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