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마라톤 풀코스 완주기

2023. 2. 10. 14:23취미생활

1. 입문

  2001. 말경 위, 십이지장은 궤양증세를 보이며, 적당한 운동을 요구한다는 신호를 하였다. 당시 시간에 쪼들리던 나에게는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하거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운동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야간에 지산동 집 부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걷기를 시작으로 수성 못에도 수시로 진출하였다. 처음에는 둘레가 약 2km되는 수성 못을 한바퀴도 돌기 힘들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세 바퀴는 쉬지 않고 돌 수 있었다.

  스스로 흐뭇하여 달리기 예찬론을 펴던 중 2002. 4. 6. 경주 벚꽃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였다. 처음으로 10km를 완주하였을 때의 들뜸이란! 한편으로 그날 42.195km의 풀코스를 완주하고 들어오는 선수들을 보며 느낀 부러움과 경외감! 나는 언제 완주가 가능할까?

2. 목달회-고등학교 동기들의 모임-

  사람 마음은 간사하여 참가예정인 대회가 없고 보니 자연 연습을 소홀히 하였다. 계기를 만들고자 서울 인접 하남시에서 6. 1. 개최되는 15km 단축마라톤에 참가하였고, 그곳서 만난 대구 김모 변호사의 풀코스 완주 경험 이야기는 또다른 자극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어 닥친 여름은 뛰는 것 자체를 고통으로 만들어서 별다른 연습없이 세월을 보내며 감격의 월드컵을 맞게 되었다. 고등학교 동기들과 술집에서 어울려 TV로 우리나라 경기를 응원하다가 마라톤 모임을 만들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술집에서의 의논이고, 재미없어 보이는 뜀박질 따위에 과연 지속적인 모임이 가능할까 염려하였지만 막상 신천 둔치에서 가진 첫모임은 성공적이었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여서 달린다는 의미에서 목달회라 이름지었다.

  이 목달회에서 단체로 참가한 9. 8.의 진주마라톤대회에서 나는 처음으로 하프코스를 선택하였고, 기록은 2시간 6분이었다. 이어 개인적으로 동아일보사가 주최하는 10. 27. 경주오픈마라톤대회의 하프코스에 참가하여 드디어 1시간 55분이라는 2시간 이내의 기록을 올렸다.

3. 음모

  목달회는 겨울 연습을 독려하고자 2003. 1. 19. 고성군에서 개최되는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 무렵 서울마라톤클럽에서 2003. 3. 2. 개최하는 제6회 서울마라톤대회의 풀코스에 개별적으로 참가신청을 해두었다. 그토록 그리던 풀코스를 이제는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엄습하는 두려움에 참가신청사실을 비밀로 해두었다.

  그렇지만 위 고성마라톤대회를 마치고 가진 바닷가 횟집에서의 회식 자리에서 그만 풀코스 참가신청 사실을 발설하고 말았다. 하프코스를 1시간 50분에 달린 기고만장함의 결과이었다. 한껏 고양된 목달회 분위기 덕분인지 위 대회에서 하프를 함께 뛴 동기 두 명도 서울마라톤대회에 같이 가겠다고 하였다. 이제 외롭지 않게 서울마라톤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4. 출발선까지

  고성마라톤대회 이후 한반도를 휩쓴 폭설과 맹추위는 풀코스 참가신청이라는 심리적인 압박감으로도 연습할 엄두를 못내게 하였다. 그저 걱정하며 세월만 보내다가 구정을 계기로 체계적인 연습을 시작하였다. 가끔씩 마시던 술도 극도로 자제하고, 인터넷으로 마라톤에 관한 기초지식을 습득하며 적어도 대회전 한 달간 200km는 연습하리라 계획하였다. 대회 3주전에는 같이 도전하는 2명과 함께 처음으로 38km를 뛰어보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하였다. 그러나 역시 계획보다는 실천이 모자라서 한 달간 약 155km를 달리는 것으로 연습을 마감하였다.

  드디어 대회일 아침! 가볍게 샤워를 함으로써 신경계와 혈액계의 컨디션을 조절하였다. 아침식사는 천천히 충분하게 하였다. 그러고도 완주할 에너지가 부족할까봐 꿀물을 한 컵 마시고 대회장소인 여의도 한강공원에 도착하였다.

  대회장은 온통 축제분위기라 절로 마음이 들뜨기 시작하였다. 혹시라도 있을 중도포기에 대비하여 팬티에 꼬깃꼬깃 넣어둔 3만원, 그러나 서울까지 와서 중도포기란 생각조차 싫었다. 응원차 따라온 처와 아들에게 출발 후 4시간 이전에는 절대 돌아올 리가 없으니 기다리지 말라는 말로 완주를 다짐하고 동기 2명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출발선으로 갔다.

5. 한강변을 달리며

  카운트다운과 함께 11시가 되자 풀코스의 출발신호가 울렸다. 약 3,000명의 풀코스 참가자들이 미리 배정된 순서에 맞춰 출발하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우리 3명은 거듭 완주를 다짐하며 초반 오버페이스가 없도록 서행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최대한의 능력발휘를 위하여 몸을 바로 세우고 지면에서 발이 많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팔도 가능한 한 짧은 폭으로 흔들어 힘을 소모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마음속으로 1km에 6분으로 달려 약 4시간 12분에 완주하기로 하였기에 거리표지판이 나오면 현재의 속도가 적정한가를 계속 체크하며 달렸다. 구름이 적당히 끼어 다소 쌀쌀한 날씨라 달리기에는 매우 좋았다. 주변경관을 구경하며 한강 둔치를 선수들과 함께 달리다 보니 힘드는 줄도 몰랐다.

  10km 지점에 이르면서 시간을 보니 한시간을 경과하고 있었다. 팔을 휘두르며 심호흡을 하고 다시 같은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15km 지점에 이르렀을 때 왼쪽다리 정강이 부분이 찌릿하며 약간의 통증이 왔다. 두 다리를 균형 있게 사용하지 않았음을 자책하며 더욱 조심스레 한발한발 내딛는데 드디어 반환점 천호대교가 보인다.

  반환점에 오기까지 에너지 고갈과 탈수현상을 염려하여 급수대마다 빠지지 않고 간식이나 음료수를 먹어둔 덕분인지 반환점에서는 몸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반환점 급수대에는 그 어디보다 풍부한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여기서 지체하면 기록에 지장이 있겠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김밥 한덩이를 입에 넣고 그대로 반환점을 돌아 달렸다.

  차츰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허리도 딱딱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 때마다 주로 주변의 도우미들과 시민들의 응원소리에 힘을 얻는다. 30km 지점, 출발한지 3시간만에 통과를 했다. 예정대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츰 고통스러워지는 몸은 왜 달리느냐며 후회를 하게 한다. 이맘때쯤 정신이 몽롱하여지며 나타난다는 런하이 현상을 기대하면서 그저 앞으로 달리던 중 38km 지점에 이르러 얼핏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최장거리를 뛴 것은 여기까지인데 과연 걷지 않고 나머지 4km를 뛸 수 있을 것인가? 점점 걷는 선수가 많아졌는데 이들은 내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걷자는 유혹이기도 하였다.

  무거워지는 다리를 추스려 그래도 쉬지 않고 달렸건만 이제까지보다 속도가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이 느껴졌다. 1km를 남겨놓고는 주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 응원에 한층 힘을 낼 수 있어서 좋았다. 골인지점 100여 미터를 남겨놓고 아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 골인지점을 통과하였다. 그곳에 기다리던 아내의 축하를 받으며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큰 수건을 몸에 두르고, 목에 걸어주는 메달의 무게를 느끼는 순간 정말로 마라톤 선수가 된 것처럼 무한한 만족감이 밀려들며 온 몸이 떨렸다. 이제 한 고비를 넘었나 보다.

6. 후기

  이틀 뒤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내 기록은 4시간 15분 15초이었다. 2월초에 초등학교 동기생 다섯 명과 내가 4시간 15분 미만의 기록을 올리면 그들이 각자 4만원씩을 갹출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내 혼자서 20만원을 내어 불우이웃돕기 성금에 사용하기로 하였다. 결국 16초 차이로 내 혼자 성금을 내게 되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그저 흐뭇할 뿐!

  또 하나, 이후 4. 6.의 합천 벚꽂마라톤대회에 출전하고, 쉴틈도 없이 4. 20.의 대구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참가하여 1시간 40분 이내의 기록에 도전하다 무릎 이상으로 상당기간 고생하였다. 어떠한 일에도 자만과 만용은 화를 부른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금년 10. 19.의 춘천마라톤대회에 다시 한번 도전하여 4시간 3분 기록으로 완주를 하였다. 이제 마라톤 매니아가 되어가는 것이다.

-대구지방변호사회지; 형평과 정의 제18집, 2003.12.1.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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