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2. 14:15ㆍ여행
이란을 다녀오며
1. 이란여행이 갖는 의미
이희수 교수와 함께하는 페르시아 문화탐방이라는 이름으로 2013. 7. 2.부터 7. 9. 사이 이란여행을 하였다.
일행은 여행사 사장인 가이드 포함 26명,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으로 두바이 가서 환승하여 테헤란 이맘호메이니 공항으로 입국하고, 역순으로 귀국하였다. 테헤란, 쉬라즈, 야즈드, 이스파한을 둘러보는 일정.
이 여행을 위하여 바쁜 시간 중에도 짬을 내어 이희수 교수가 쓴 이슬람에 관한 500여 페이지 책자를 읽었고, 여행 도중 수시로 이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이란을 알아보고자 부지런히 돌아다녔건만 지금 머리는 멍한 상태이다.
도무지 이란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득하기만 하여 감히 이란에 관한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을뿐더러 단편적인 느낌을 피력하는 것조차 주제넘은 짓으로 보인다.
버스로 하는 긴 여정 동안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끝이 없는 사막과 나무 한포기 없는 돌산, 그리고 한낮 온도가 섭씨 45도를 넘나들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햇살이 있는 나라. 세계 최초의 대제국 페르시아를 건설하였던 나라. 이슬람 문화권 중에서도 원리주의가 강하여 여성에게 히잡을 법률로 강요하는 등 신정체제의 정치로서 30년 세월 동안 서구의 경제 통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티는 나라. 북한과 무기거래를 하는 등 외교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한류에 열광하고 한국 전자제품을 최고로 생각하는 나라. 이러한 이란에 대하여 며칠간 여행을 다니면서 이해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저 떠오른 느낌을 기록하여 둔다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2. 단편적 감상
가. 자연환경
한반도의 8배나 되는 넓은 나라이니 사람이 살기 적당한 기후에다 농경에 지장이 없는 땅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이란은 비행기 위에서나 버스를 타고 지날 때도 끝없는 사막과 돌산이 이어지다 몇km 내지 몇 십km를 지나면 나타나는 작거나 조금은 큰 오아시스, 수풀들이다. 그리고 땅을 밟으면 헉 소리가 나는 열기.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왜 여기서 살기로 했을까? 어떻게 물도 부족한 곳에 도시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 알렉산더나 징기스칸은 무엇이 있다고 이런 곳까지 왔단 말인가? 정말 불가사의로 여겨진다.
먼 옛날 페르시아 제국이 건설될 당시는 현재와는 조금 다른 초지 등으로 형성되어 부족하나마 삶을 유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주된 경제활동을 교역으로 선택하게 되고, 이런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천문학, 점성술을 발전시키고, 교역활동을 위한 힘을 기르다보니 통합된 힘이 필요하여 제국을 만들고, 나아가 정복으로 가장 확실한 경제활동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혹독한 환경을 바탕으로 생존을 위하여 여러 분야의 학문을 발전시켜 인류문화의 토양을 이룬 대가로, 그리고 이런 불모의 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대가로, 신은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을 준 것이 아닐까.
나. 한국과 관계
우리는 분단된 나라를 가졌기에 여행지에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의례 남 혹은 북이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남한 북한이라는 표현으로 구별하여 이란과 관계를 보면 과거 친미로 분류되는 팔레비 정권하에서는 당연히 미국과 가까운 남한이 이란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서울의 테헤란로와 테헤란의 서울의 길을 보면 명백하다.
그런데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이란 혁명이 성공하자 강력한 반미국가로 돌아선다. 반미를 지향하다 보니 동일한 길을 가는 북한과 적극적인 동맹관계를 맺게 된다. 무기교역을 하고 심지어 핵개발도 함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으로부터 악의축이라는 지목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북한과 적극적인 동맹관계이다 보니 이란여행 자체를 위험시하거나 친북좌파냐는 놀림도 듣게 된다.
이러한 친 북한의 이란에 우리 대한민국의 대사관이 있다. 왜 이란은 북한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남한과도 외교관계를 기꺼이 하려고 하는가?
북한의 경제력이 이란의 교역욕구를 충족하지 못함인가. 아니면 한국의 세계적인 제품 등이 그들에게 필요하여서일까(TV, 에어콘, 냉장고, 휴대폰 등 전자제품은 그들의 필수품으로 보이며, 기아의 프라이드 승용차도 제법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보였다.).
일찍이 9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하였다는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 그리고 길거리서 만난 어느 이란인은 구준엽의 팬이라고 하며, 호텔에서 만난 어느 여대생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해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등 한류현상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남한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정작 여행기간 중에 닥친 김일성의 사망 19주기를 맞아 이란의 8면짜리 영자지 신문 중 1면을 송두리째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세계에 미친 영향 등을 찬양하는 것을 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 이슬람
이슬람 하면 알카에다, 그리고 세계무역센터를 관통하는 비행기를 떠올리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과연 이슬람은 한손에 칼을 들고 다른 종교에 적대적이며, 폭력도 불사하는 과격한 종교인가.
물론 유일신 종교이니 다른 종교를 배척할 것은 당연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슬람은 다른 종교에 관대하였다. 또한 인구 15억이 믿는 세계 3대 종교라는 사실만으로도 교리 자체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나아가 신에게만 복종하고, 성직자 계급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누구나 이상의 세계로 꿈꾸는 평등세상을 구현하고자 한다. 폭력적일 수가 없다.
여행기간 중에 스친 이란 사람 누구나가 진심을 담은 친절을 보여주었다. 여태껏 어느 여행지에서도 볼 수 없는 평안함을 맛볼 수 있었다. 보다 원리주의적이고 격렬하다고 알려진 시아파는 세계 이슬람 신자의 10%에 불과하지만 이란은 시아파가 90%인데, 이런 이란 사람들을 보더라도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가 폭력, 과격과 가까울 수는 없다.
이러하니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다른 종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특이한 문화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가질 필요가 있다. 좀 더 나가자면 그들 중 일부가 저지르는 과격 테러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알고 화해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라. 페르세폴리스
페르세폴리스는 미완의 발굴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위용을 여지없이 과시한다. 11m 또는 19m의 돌기둥만으로도 위압을 당하는데, 곳곳에 조각된 당시의 조공 진상 행렬 모습이나 목우상, 인면수신상과 같은 동물 형상 등에는 아예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제국의 위엄을 보여 주위 여러 종족이나 제국의 신민들로부터 존경과 복종을 얻으려 하였겠지만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랐을 것인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된다. 오늘날 곳곳에 남은 화려한 유적은 과거 선조들의 고난의 흔적이니, 결국 인간이란 선대의 희생이 후대의 복을 가져오는 그런 윤회를 거역할 수없는 운명인가.
마. 조로아스터교
약간의 사이비 냄새가 나는(물론 이번에 나의 이런 인식은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조로아스터교는 인간에게 선과 악을 선택할 의지를 줌으로써 더욱 선을 실천하도록 독려하는 종교이다. 유일신 사상이나, 최후의 심판, 천사와 악마 등의 관념은 기독교나 이슬람에 계승되었다고 한다.
이제 이슬람에 거의 흡수되어 겨우 15만 명의 신도가 있다고 하지만 그 신도들의 조장터(鳥葬터)는 죽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매장이나 화장보다 훨씬 자연스런 순환으로 보여진다.
바. 테헤란의 트래픽
정말 넘쳐나는 차들이다. 휘발유 가격이 물보다 낮다고 하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끝이 없는 차량행렬은 의문이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저리도 돌아다닌단 말인가.
3차선의 차도를 4차선인양 줄지어 가는가 하면, 최대한 생략된 신호등으로 인하여 목적지를 가자면 수시로 충돌 위험을 무릎 쓰고 차머리를 들이대야 하는데, 양보도 잘하여 주지 않지만 양보가 없어도 용감하게 들이대지만 정작 사고는 나지 않으니 참 신통한 일이다. 정말 무질서 속의 질서랄까.
우리가 탑승한 대형버스가 좁은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운전이 아니라 예술이었다.
이런 트래픽이 새벽 1시가 넘어도 계속되어 깜짝 놀랐지만, 기후 때문에 형성된 밤 문화의 결과라는 것을 여행 중반을 넘을 때쯤 알게 되었다.
사. 국내선 비행기의 결항 해프닝
우리 여행일정 중에 테헤란에서 쉬라즈로 가는 것은 이란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국여행사는 오후 5시 45분발이라고 알았지만 이란 여행사는 7시 25분발이라고 할 때 이미 조짐이 이상하였다. 국내선 비행장 메흐라바드 공항에서 비행기표를 받을 때 9시경으로 지연된다고 하였다.
그 정도야 있을 수 있으려니 하면서 8시경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였지만 도무지 탑승게이트가 정해지지 않는다. 탑승게이트가 오픈된 상태에서 탑승대기하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어쨌거나 전광판에는 계속 우리가 탑승할 비행기에 대하여 지연이라는 표시가 뜨더니 11시경이 되자 운항취소되었다는 표시가 뜬다.
헉! 어떻게 되는거지, 하는데 다른 시간대 쉬라즈행 비행기의 남는 자리에 승객을 태워간단다. 그러나 남는 자리보다 탑승객이 많으니 그 탑승구는 항의 등으로 어수선하다. 한국여행사 및 이란여행사 직원이 관계자에게 가더니 급히 돌아와 전원 바로 비행기 타러 빨리 가자고 한다. 우리 일행은 쏜살같이 달려 아직도 탑승 못한 사람들로 혼란을 겪는 탑승구를 재빨리 빠져나가 비행기로 데려다 줄 버스에 탑승하고서야 비로소 일행이 모두 탔는지 겨우 돌아본다.
그런데 버스는 도무지 비행기로 가지 않고 항공관계자는 버스 밖에서 서로 뭐라고 큰 소리로 떠들고만 있다. 그러다가 버스 안의 이란인들은 내리라고 하니 대여섯 명 되는 그들 모두가 조용히 내린다. 버스 출발! 참 묘한 감정이다. 버스에서 내려진 이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한국의 위상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전혀 항의조차 하지 않고 내리는 이란인들의 태도에 대한 경탄 등.
그러나 우리를 태운 버스는 비행기로 우리를 데려가지 않고 버스를 이용해야하는 도착승객들이 내리는 곳으로 가더니 내리란다. 어안이 벙벙하였지만 사태파악에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우리 일행의 숫자가 비행기 잔여좌석을 초과하여 결국 우리 모두 탑승 못하게 되고, 비행기는 이미 출발한 것이다.
이란가이드가 항공사에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고, 다음날 첫 비행기 탑승의 확약을 요구하며 지리한 싸움을 계속할 때 우린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고(사실 그 사이 우린 이란가이드 마저 우릴 버리고 달아난 것이 아닌 가 의심도 하였다), 결국 새벽 1시가 넘어 항공사가 태워주는 차로 1시간여를 달려 시내 어느 호텔에서 두어 시간 눈 붙인 채 다음날 첫 비행기 탑승하는 것으로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로 특히 항공기의 경우 필요한 만큼 부품 공급을 받지 못하여 점검의 필요가 있을 때 이를 대체할 항공기가 없기에 이러한 결항사태가 일어난단다. 그러나 게이트 오픈상태서 탑승절차가 진행된다던지, 비행기가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서 발권을 하고, 태우지도 못할 거며 탑승게이트를 통과시키는 처사 등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는 멋지게 뒷통수를 맞았지만 항공관계자들이 이란인을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서는 정작 우리 한국인들만 탑승을 하지 못하게 하는 꾀는 결코 이란인들이 녹녹한 사람들이 아니란 걸 시사한다.
3. 여행 소감
우리 일행은 이란에서의 여행을 마치며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각자 소감을 간략히 말하였다.
나는 우선, 이렇게 인간이 살기 힘든 나라에서 과거 찬란한 문화의 꽃이 핀 것을 보면 인간에게는 시련이 크면 클수록 발전의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한편으로 만나는 이란 국민들 모두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서구의 통제로 30년간 정지된 세월을 보낸 결과로 보이니, 인간이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에 도움이 되는 가 의심이 들고 그래서 과연 현재와 같이 해마다 성장을 당연시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의 한 느낌은 감정에 복받쳐 울음이 비칠까봐 마음속에 그냥 담아두었다. 이란 땅 열사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건설을 누구도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데 주저 없이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건설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아아, 가족을 위하여 불모의 땅에서 내 한 몸 기꺼이 희생하였던 그들! 차라리 노예였다면 어쩔 수 없다고나 하지, 1일 3교대제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도로를 완성한 그들의 의지는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다. 아마도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주목받는 나라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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